일본의 47개현들 중에 안쓰러운 느낌이 떠오르는 현이 몇 개가 있는데 후쿠시마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안쓰럽다'라는 표현이 지역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제겐 후쿠시마현은 그런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후쿠시마현을 간 적이 있습니다. 아이츠와카마츠라는 다소 이름이 긴 곳이었는데요, 눈 이 내리던 아름답고 한적한 밤풍경과 그곳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그곳에도 엄청난 재난이 있었습니다. 특히 후쿠시마현 해안가에 있던 원자력발전소의 피해와 그 후에 방사능 오염, 그리고오염수 처리 문제 등등. 이런 사실들은 이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죠.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후쿠시마는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어쨌든이번에 소개할 현은 후쿠시마현인데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살짝쿵~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소개해 보겠습니다.
안쓰러움 1 : 아이즈와카마츠성
후쿠시마현은 도후쿠 지방에 속하지만 비교적 도쿄와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도후쿠 지방의 여러 현 중에서는 가장 남쪽에 있죠. 저에게 후쿠시마현은 우리나라의 강원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험준한 산들과 맑은 호수, 외로울 정도로 한산한 풍경들...
아이츠와카마츠시는 후쿠시마현에서 약간 서쪽에 위치합니다. 반면에 동일본 대지진 때 주로 피해를 입은 도시들(이와키, 소마 등)은 해변을 끼고 있는 동쪽 지역입니다.
저는 아이즈와카마츠시의 사람들과 일이 있어서 갔었습니다. 그곳의 공무원분들도 만나구요. 이곳에서 저는 꿈같은 풍경을 보았더랬죠. 어떤 산속 료칸의 넓은 통유리창에서 본 눈오는 밤풍경이었는데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의 하나로 남았습니다.
아이즈와카마츠에는 성이 하나 있는데, 아이즈와카마츠성 혹은 쓰루가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에서 이른바 보신전쟁(1868년)이라 불리는 기간 동안 메이지 신정부와 저항하는 막부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옛날에 아이즈번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 전투를 따로 떼어서 아이즈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아이즈번은 메이지 유신 세력인 사츠마번, 쵸슈번과 다르게 에도 막부에 충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이지 신정부군이 아이즈번으로 쳐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전력차가 커서 승부는 이미 나있는 상태였죠. 하지만 아이즈번 사무라이들과 일반 서민들까지도 쓰루가성에서 끝까지 저항을 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로 이루어진 백호대(白虎隊)는 전쟁의 처절함을 잘 말해줍니다. 신식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신정부군에 맞서 칼 한 자루를 들고 저항한 백호대. 그중에서 마지막 19명은 성이 함락되려고 하자 모두 칼로 스스로의 생을 마감합니다. 그 후 전투에 참가한 사무라이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인 여성과 아이들까지 모두 집단 자결했다고 합니다... 아이즈와카마츠시에서는 그 소년병들의 무덤에서 위령제를 연다고 하네요.
안쓰러움 2 : 훌라걸스
영화 훌라걸스는 후쿠시마현의 동쪽 지역인 이와키시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역은 원래 석탄을 캐는 탄광이 있었고 그 탄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지역이었죠. 하지만 1960년대 초 저물어 가는 석탄산업과 그 틈을 타서 치고 들어오는 원자력 발전소 건립 계획(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도 탄광촌 주민들을 몰아내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을 배경으로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리조트로 부활하고자 했던 이와키는 21세기 들어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뿐만 아니라 방사능 유출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등으로 지역의 미래는 암울해집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하와이안 댄스를 내세운 리조트 산업. 폐광촌의 어둠을 리조트 산업이라는 밝음으로 바꾸고자 하는 지역주민들의 처절한 노력들이 영화 훌라댄스를 통해서 보여집니다. 참고로 영화 훌라걸스는 재일교포였던 이상일 감독이 연출을, 너무 이쁜 아오이 유우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안쓰러움 3: 노구치 히데요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928년)는 이나와시로 호수로 유명한 후쿠시마현 이나와시로 출신입니다. 그는 세균학자로 스피로헤타라는 매독의 병원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해 왼손을 쓰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되었고 미국의 록펠러 의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1913년에 스피로헤타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노구치는 자신의 연구하고 있던 황열병의 검증을 위해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은 참 가혹하죠. 노구치 히데요는 아무도 없는 아프리카 가나땅에서, 자신이 연구하던 병, 황열병에 걸려서 죽고 맙니다.
일본의 지폐인물로 선정될 만큼 업적을 인정받은 노구치 히데요. 그의 사진을 보면 장애를 갖고 있던 왼손을 숨기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깡시골인 이나와시로 출신으로 먼 아프리카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몇몇 부정적인 행동도 했지만) 그는 어쨌든 세균 연구를 위해 모든 삶을 바친 사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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