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테현은 도후쿠 지방에 속하는 현으로서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현 남쪽에 있습니다. 아오모리현이 동해와 태평양, 양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와테현은 현의 동쪽으로 태평양만 면하고 있고 현 서쪽은 아키타현과 경계를 이룹니다. 그 경계에는 오우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와테현은 일본의 현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현입니다. 47개의 도도부현을 모두 합치면 홋카이도 다음으로 넓습니다. 이와테현은 대부분 면적을 산지가 차지하고 있어 인구밀도가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전체의 인구는 110만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칩니다. 현청은 모리오카에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의 영광, 세계문화유산 히라이즈미
히라이즈미는 이와테현 남쪽에 있는 히라이즈미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헤이안 시대 대호족이었던 오슈후지와라 씨의 본거지였습니다. 오슈후지와라 씨는 처음으로 히라이즈미 지역에 들어온 후지와라노 키요히라 이후 거의 10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히라이즈미에서 세력을 떨쳤습니다.
그런 연유로 당시 수도였던 교토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도후쿠 지방의 조그마한 마을이 갑자기 융성하게 되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히라이즈미의 인구는 10~15만 명 정도로 교토인 헤이안경에 이어 2번 째로 인구가 많았다고 합니다. 히라이즈미가 오슈후지와라 씨의 지배에 있을 동안에 사원, 정원 등을 비롯해서 수많은 불교 건축물들이 세워졌습니다. 그 유적들이 아직까지도 조그마한 시골 마을인 이곳 히라이즈미정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츄손지, 모츠지와 같은 사찰 등이 있습니다.
특히, 츄손지의 곤지키도는 일본의 국보입니다. 곤지키도(金色堂)는 이름 그대로 불당의 천장, 벽 등 곳곳을 금박으로 입힌 매우 독특한 건물로서 당시의 히라이즈미 지역에서 번창한 황금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유명합니다. 오슈후지와라 씨의 흔적들인 이러한 히라이즈미의 유적들은 주변의 자연환경들과 함께 2011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미야자와 겐지와 이시카와 타쿠보쿠
이와테현 출신으로 뛰어난 시인들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미야자와 겐지와 이시카와 타쿠보쿠입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이와테현 출신 이외에 뛰어난 문학세계를 만들었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공통점도 있습니다.
먼저 미야자와 겐지는 시인이기도 하고 소설가, 동화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와테현 하나마키에서 태어났고 자신의 고향인 이와테현을 매우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에스페란티스토였던 그는 이와테현을 에스페란토어로 이하토브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고향 이와테를 위해서 활발한 농촌 계몽활동과 교육에도 힘썼던 사람입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그가 죽고 나서 세상에 알려졌는데 일약 일본의 국민시라고도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죠. 일본의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건데, 원래는 시가 아니라 불교를 깊게 믿었던 겐지가 스스로를 일상생활을 반성하고 위해서 기도문처럼 가지고 다니려고 썼던 글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소설은 우주를 나는 철도가 등장하는 매우 기발하고 독특한 소설입니다.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은하철도라는 상상력의 모티브가 되었던 소설입니다.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이와테현 모리오카 출신입니다. 그는 26세에 요절해 남긴 작품 수가 많지 않습니다. 20살인 1905년에 시집 '동경'을 발표했고 죽기 2년 전인 1910년에 '한 줌의 모래'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겨우 26년이라는 삶을 산 탓도 있겠지만 그의 작품은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고 사후에 높게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고향 이와테현을 떠나 문학으로 성공하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했ㅅ브니다. 도시에 살면서 타구보쿠는 늘 생활고와 병에 시달렸는데 그런 그의 애달픈 처지가 작품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시, 특히 일본의 전통시인 단가에는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냉혹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따뜻한 서정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세상에 맞춰서 사는 영악함이없는, 꾸미지 않은 순수함을 가졌고 또한 진한 인간미를 지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습니다. 타쿠보쿠는 조선를 강제침탈한 일본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시를 몇몇 썼죠. 그의 단가 중에 노쇠해진 어머니를 업고 쓴 시가 있는데, 참으로 기분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장난하듯 어머니를 업어보니 /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눈물 / 세 걸음 걷지 못했네
오타니 쇼헤이와 사사키 로키
공교롭게도 이와테현 출신으로 뛰어난 야구선수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오타니 쇼헤이와 사사키 로키입니다. 이 두 선수는 제가 개인적으로 팬이며 좋아하는 선수들입니다.
먼저 지금 미국의 MLB LA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는 세계문화유산인 히라이즈미와 가까운 이와테현 오슈 출신입니다. 고등학교 역시 이와테현 남서부 지역 하나마키시에서 다녔죠. 오타니 쇼헤이 선수는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설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는 이른바 '이도류'라는 투수와 타자를 동시에 하는 선수입니다. 단순히 투수, 타자를 같이 한다로 그치지 않고 오타니는 투수로도 그리고 타자로도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죠.
오타니는 고교시절부터 부각을 나타내서 일찌감치 일본프로야구 지명을 받았고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를 거쳐 드디어 MLB에 진출했습니다. 미국으로 간 이후로도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부터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오타니는 야구도 잘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인성으로 유명한 선수입니다. 그의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소박한 생활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사키 로키는 NPB 지바롯데 마린스 투수로 165km에 달하는 강속구 투수로 일본에서 최연소 퍼펙트, 13타자 연속 탈삼진 등의 기록을 달성한 선수입니다. 그는 이와테현의 남동쪽 바닷가인 리쿠젠타카타 출신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인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꺼번에 잃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비극적인 사건에도 굴하지 않고 야구선수로서 커리어를 쌓아 나갔고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 중에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인지 그는 야구선수로서 성공을 해서 지진의 아픔을 겪고 있는 고향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죠. 사사키 로키 선수의 경우도 오타니 선수처럼 미국 프로야구의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부상 주머니'라는 체력적인 단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성장과정에서도 잘 극복했듯 단점을 잘 이겨내리라 생각합니다. 머지않은 시간 내에 MLB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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